그런데 이런 잔잔함과 달리 거문도는 19세기 말 국제정치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서울 정동의 22만 평 땅을 거의 공짜에 파는 등 온갖 편의를 러시아에 제공했다.이곳에 영국군 기지 사령부가 있었는데 이 운동장에 우리나라 최초의 테니스장이 만들어졌다. 오른쪽 섬이 거문도항이 있는 고도다.친청파·친일파·친러파의 갈등거문도 서도 남쪽 끝에 있는 등대.차준홍 기자 급기야 고종은 아관파천까지 단행했다. 이에 힘입은 영국은 거문도를 조차하기 위해 조선의 보호국임을 자처하는 청과 교섭했다.블라디보스토크보다 효용 가치가 높은 부동항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영흥만(원산만)과 제주도. [사진 김정탁] 러시아의 남진 정책은 방향을 틀어 중앙아시아로 향했다.한편 청은 거문도 사건의 해결에 중재자를 자처함으로써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더욱 강화했다. 오른쪽 섬이 거문도항이 있는 고도다.[사진 김정탁] 거문은 ‘클 거(巨)에 ‘글월 문(文)인데 여기에는 일화가 있다. [사진 김정탁] 그런데도 러시아는 한반도 부근에서 새로운 부동항을 찾기 위해 애썼다.크림전쟁 여파로 생겨난 러시아의 재정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서였는데 알래스카를 획득한 미국을 통해 당시 영국령이던 캐나다를 지리적으로 압박하려는 속셈도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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