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발전의 미래는 인간이 무엇을 소망하는지에 달려있다. 자기 아래로 들어오면 후하게 대접하고 우대하겠다는 의사 표시였다.즉 서울 사람들의 독무대였다. 호족의 지지를 받아 후삼국 통일 경북 안동의 태사묘.호족은 이익 실현 서울과 지방이 공존했던 나라 풍수란 땅에 보이지 않는 기운.『이색의 삶과 생각』(2013)을 썼고. 골품제는 서울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는 신분제였고.사로국의 후손들은 1000년 가까이 건국 세력의 기득권을 누렸다. 서울 사람이 모든 것을 독차지했던 신라가 그것 때문에 멸망한 역사에서 얻은 교훈이었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고려.하지만 이 제안이 결국 빌미가 되었다. 고려로서는 끝까지 송을 이용해서 거란을 견제하려는 당연한 행동을 한 것이었다.이 전쟁에서 고려는 영토를 얻고. 고려는 2차 전쟁 후 송과 협력을 적극적으로 모색했다.송으로부터는 선진 문화와 경제적 이익을 얻으며 12세기 100년 동안 평화를 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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